"예고 없던 가을 비 맞으며 공묘로 향해”
"예고 없던 가을 비 맞으며 공묘로 향해”
  • 김장수
  • 승인 2015.10.31 21: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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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무인들, 공맹고도(孔孟古都) 가다 <2> 청도에서 곡부로

공자님은 “유문사자필유무비 유무사자필유문비(有文事者必有武備 有武事者必有文備: 문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무을 준비하고 무를 아는 사람은 반드시 문을 준비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즉 문무일도(文武一道) 또는 문무불이(文武不二)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공자(孔子)는 사회적으로는 대동사회(大同社會)와 안으로는 예(禮)를 중시하고 그 속에서 인(仁)이 나와 군자(君子)의 도리(道理)인 충(忠)과 효(孝)의 기본철학에 바탕을 두었다.

 공자님을 모신 공묘.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라는 등의 논어 경전이 펼쳐져 있다.
문무(文武)는 우리선조의 양반사상과도 일치하는데 본래는 공자의 사상으로 바탕 한 양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는 원래 동이족 사람인데 그의 고향은 곡부와 그곳에서 가까운 추성시에 있다.

우리는 새벽에 출발하여 청도에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선인들의 말씀에 공감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3시부터 설친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서는 순간 출구 오른쪽 벽면에 큼지막한 영(赢)자 현판이 걸려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영(永)자 필법을 기본으로 하는데 중국에서는 이 영(赢)자가 기본 필법이라고 한다. 중국과는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예실력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인들은 서예의 기본 필법으로 영(赢)자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영(赢)자는 진시황(秦始皇)의 성이며 이름이 정이다. 이 영자는 진시황을 뜻하는 글자라고 할 수 있으며 중국을 최초로 통일을 이룩한 진시황(秦始皇)즉 영정(嬴政)이다. 중국인들이 서예에서 진시황의 성을 모체로 하여 서예연습에 기초로 한 것으로 보여 진다. 처음 접하는 글자에 호감이 갔다.

사실 서예를 중국에서는 서법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서도라 한다. 무협(武俠)에서는 서예의 기법을 검법과 연계 시켜 수련한다. 검을 잡을 때는 붓을 잡을 때와 같고 붓끝은 검 끝과 같아 예리하게 움직여야 한다. 즉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한다.

처음 중국무술을 배울 때는 모두 숨기는 게 기본이었다. 중국무술이 70-80년대 한창 유행일 때 고급권법 특히 상형권 권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일부 도장에서는 사무실 또는 수련이 끝난 후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전수하는 모습을 당대에 중국무술 한 분이라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중국청도공항에서 글자의 신비함에 젖어 있을 때 미리 준비한 곡부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으로 공맹고도에 기대를 걸면서 버스에 올랐다.

우경명 수련원생이 막간을 이용하여 태극검을 시연하고 있다. 
중국여행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일행이 준비한 것은 3월부터 오원근 수련원생의 수고로 3회에 걸쳐 의견을 모아 정리하고 분석하여 준비한 여행이었다. 자유여행을 원칙으로 하고 일부 중국 현지 여행사의 도움을 받기로 의견을 모았다. 결과적으로 급변하는 최신 현지 정보, 식당이나 호텔 여행 코스, 다양한 현지이동 등을 효율적으로 하여 비용절감을 꾀할 수 있었다. 덕분에 10명 여행에 18인승버스를 타고 여유로운 탐사를 출발하게 되었다.

청도공항은 청도반도 끝에 있다. 청도공항 쪽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그 길이가 무려 41.58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마라톤 길이(42.195km) 버금가는 다리이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나는데 모두들 알 수 없는 중국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끝도 안 보이는 다리 위에서 우리를 실은 버스는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청도공항 쪽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교주만대교는 길이가 무려 41.58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공자님의 생전의 초상화
청도에서 5시간쯤 달려 곡부 고속도로 출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운전기사 말에 창가를 보니 공자생가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차 창밖으로 보이는 산이 움푹 파인 듯한 사람머리 모양이 보였다. 구전 또는 일부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태어나서 저 산자락 아래서 자랐다고 한다. 공자의 출생을 공자부친은 70여살 이고 어머니는 20살 채 안 되는 아낙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공자는 야합(野合)으로 태어난 아이로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출생에 신비보다는 혈기 왕성한 바람난 노익장 이야기로 볼 수 있으며 공자아버지는 병사였는데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따지고 들면 공자의 출생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어린 엄마의 친정이 니구산(尼丘山) 근처였는데 공자의 字가 ‘중니(仲尼)’인데 중(仲)이란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며 중니에서 니란 니구산(尼丘山)에서 빌어 얻은 둘째아들이라 볼 수 있다. 친정이 바로 그 산 아래였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산의 모양과 머리모양이 흡사하여 이름(名)을 구(丘)라 했으며, 성(性)은 공(孔)이요, 이름이 구(丘)인데 그 구가 언덕구자이다. 따라서 공자(孔子)의 본명(本名)은 공구(孔丘) 자(字)는 중니(仲尼)이다.

곡부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다 되었다. 차안에서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하여 그리 배는 고프지 않았다. 먼저 내일 공묘를 보기위해서 사전답사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는 버스를 타고 곡부시내로 들어 설 때 놀라운 관경이었는데 성벽 있는데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 성벽 안이 시내 중심이다’라고 하는데 그 옛날 지어진 성(城) 그 규모나 크기가 오늘날 발전된 사회구조에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랜 여정 끝에 곡부성에 도착한 일행이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여유를 보였다.
정확히 언제 지어진 성인지는 몰라도 완전 중국스타일에 이중 성(城)이다. 성 입구가 전면에 성문이 있다. 전면 성 입구로 들어가면 또 성문이 있다. 외적이 들어와도 두 번째 성문을 통과하여야 성내로 들어설 수 있다. 그래서 전(前)면 성문을 통과할 때 안쪽 성벽위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성이다. 당나라 태종이 자기가 집권하기 위해 모든 친지와 가족형제를 불러놓고 몰살시킨 “현무문의 난”을 일으킨 장소가 바로 이런 모양의 성 구조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자를 뵐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밖을 나와 보니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고에 없던 비였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나는 그 비를 맞으며 공묘로 향하였다. 함께한 나와 수련원생들은 모두 비를 맞고 줄을 섰는데 함께한 사모님들은 모두 우산을 들고 있었다. 남자가 아무리 섬세한들 여자를 따라 갈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공묘(孔廟) 안으로 들어갔다. 공묘는 공자님을 모신 사당을 지칭하는 말이다.

공자는 인간의 삶의 방법을 어떻게 보면 규범을 통해 윤리나 도덕이라는 논리로 체계화라는 노력에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태극권에도 원리와 규범이 있다. 태극권보(太極拳譜)에 의하면 태극권(太極拳)은 장권(長拳) 또는 십삼세(十三勢)라 했다. 장권은 흐르는 물과 같이 끝임 없이 이어지며, 십삼세(十三勢)는 붕(掤), 리(捋), 제(挤), 안(按), 채(采), 열(挒), 주(肘), 고(靠), 진(进), 퇴(退), 고(顾), 반(盼), 정(定)이다. 태극의 원리는 음양 오행팔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즉 붕리제안 채열주고는 팔괘의 근거와 진퇴고반정은 오행의 근거를 둔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를 맞으며 고색창연한 곡부성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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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쁨♡ 2015-11-02 15:57:15
사진만보면 관광하는 기분이 드는데 글과함께보니 알차고유익하고 재밌네요!!

화전 2015-11-02 12:41:35
선인들의 생각을 지금에 연결하여, 건강하게 양생하며,
나누며 함께 하고 계시니
고맙습니다.

백두산 2015-11-02 12:18:34
관장님의 멋진 말씀 잘 새겨 듣겠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우백 2015-11-02 12:08:04
공자님의 발자취를 찾고, 그분의 말씀에서 태극무술의 근원을 찾으려는
충청무술인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큰 깨달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