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혼, 인장 예술 속에 녹아내려...
장인의 혼, 인장 예술 속에 녹아내려...
  • 조병무
  • 승인 2012.08.21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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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무의 e노트]대한민국 인장공예 류철규 명장 이야기

정신이 맑은 오전에만 작업을 하는 류철규 명장
“저는 오전에만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하루 2개 이상은 절대로 제작하지 않습니다.”
“기를 모아 작업 할 수 있는 시간대가 오전이 좋고 2개 이상은 제 기운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1개 제작에 필요한 시간이 약 3시간 정도입니다.”

“요즈음 기계로 만드는 도장과 같이 생각하면 큰 오산 입니다.”
“주문자의 사주를 보고 그 사람에 맞는 재질과 글꼴을 만들어 제작해 드립니다.”
“여기에 나의 혼을 넣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품 그 이상의 것 이지요.”
“그래서 제가 제작한 인장에는 반드시 제 이름이 새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 명예를 걸고 제작합니다.”

“그래야 그 인장의 기운으로 인장 주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잘됩니다.”“미신처럼 믿지 않으려 하겠지만 저는 철저히 믿고 작업합니다. 그리고 확신 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사실들이 입소문으로 알려져 경향각지의 유명 정치인, 법조인, 경제인 등등이 찾아온다고 한다. 대전시 선화동에서 인장 공예를 하는 류철규 명장은 자신의 비결을 설명하면서 철저한 수작업으로 제작을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특히 큰 사업을 하는 CEO는 종교에 관계없이 찾아와 상담을 하고 주문하고 가지요. 관공서 역시 직인 등 생각하는 분들은 생각이 달라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고 인장을 맡기지요. 그래서 저는 철저한 수작업과 맞춤만으로 제작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상아도장을 최고로 알고 무조건 상아를 선택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대로 그 사람에 맞는 재질을 선택해서 각해야 유익하다고 재차 강조한다. 인장의 재질은 상아, 흑수우(물 소뿔),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 등으로 벽조목이 일반적으로 제일 많다고 한다.

류철규 명장이 만든 인장들

한번은 어떤 분이 찾아와 상아 도장을 고집해서 손님에게는 상아가 맞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재질을 권해도 막무가내로 요구하여 거절을 하였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는데, 며칠 후 다른 사람이 찾아와 제가 추천한 재질의 인장 2개를 주문했다. 알고 보니 모 재벌이었다. 그래 사업은 그 사람처럼 고객에게 유익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해야 한다며 2개를 구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가격이 얼마냐고 묻자?

재질에 따라 다르나 약 20만원 ~ 30만원 라고 한다.
구입 동기는 중년 층 이상이 인감용으로 주문하는 것이 가장 많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선물 하는데 이는 평생 쓸 수 있는 것으로 또 후손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커서 사려 깊은 어른들이 애용한다고 한다. 기타 승진 및 생일 선물로도 안성맞춤으로 명장 인장을 가지고 있음은 나름대로 긍지를 가져도 된다며 자신은 기계화 된 요즈음 인장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이이라며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아는 사람 다시 말해 가치를 아는 분들은 찾아오기 마련이라며 이들만을 상대하기도 벅차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전통의 맥을 이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대가 끊어질 판이라며 긴 한숨이다.

작업실 내부, 어수선하면서 여러가지 도구들로 어지럽다.

인장업과의 인연은?

충남 병천이 고향인 류 명장(61세)은 고등학교 시험에 합격한 직후 부친이 돌아가셔서 장남의 책임 때문에 할 수 없이 직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어려서 부터 손재주에 남다른 능력을 보인 덕에 주변 어른들의 추천으로 시작한 이 길이 40여년이 되었고 도청 앞 이곳에서 시작한 지도 30년 세월을 넘기고 있다.

열일곱 살 그 당시 업계의 큰 별로 통하는 이석성 선생님으로부터 8년 동안 좌서(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씨를 씀. 이는 도장을 새기는데 필요한 글씨임)와 5체(전, 예, 해, 행, 초) 등 고난의 세월을 이긴 후 선생님의 권고로 아주 드물게 선생의 스승인 박인규 옹으로부터 2년간의 가르침을 받는 행운을 얻는다. 이는 성실하고 진지한 류 명장의 학구 태도에 감동을 받은 선생님의 배려다.

이후 추사체의 대가인 연파 최정수 선생으로부터 서예 등 주변 학문에 정진하여 류철규 서체를 개발하게 이른다. 그만의 독특한 서체는 예술성과 위조가 불가능하여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불황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류철규 명장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 된 경쟁력이다.

또 다른 작업은?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저녁 8시까지 점포에서 작업을 하는데 오전 인장 작업 후에는 서예, 전각, 서각 작업을 한다. 이 중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은 108개의 회양목 나무뿌리를 이용 각을 한 반야심경으로 5년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 역작이다. 이 작품은 찍는 데만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며 일본 등 해외에서 주문이 많으나 마음이 와 닿지 않으면 거절한다고 한다.

“인장업계의 최고의 호황기는 80년대 입니다.”
“도장이 절대로 필요했던 그 시절에는 주문량을 다 소화 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만들면 모두 남을 정도로 수익도 많은 업종 아닙니까?”

“한때 700여 회원이던 협회도 이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쇠퇴 했지요.”
“인장제도가 사라질 요즈음 분위기보면 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대만과 일본이 인장제도를 없앴다가 혼란으로 다시 부활한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류 명장.”
“젊은 청년이 10년 정도 이 분야에서 혼신을 다하여 정진하면 분명히 성공 할 것입니다.”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길,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류 명장의 목소리에서 전통의 맥을 잇고자 하는 간절함이 배어났다.

명장패
  

“지금 기계화에 밀려 수작업이 뒷전에 있지만 그래도 수작업으로 제대로 된 인장을 만든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힘든 기간이 끝나면 기쁜 날이 오지 않겠어요. 경제력이 향상되고 우리의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사람들 가슴에 살아 숨 쉴 때 인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설 것입니다.”

대한민국 명장 심사위원, 대한민국고불서화협회 초대작가, 한국서화작가협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그동안 수많은 표창과 훈장, 사회 공헌에 따른 감사패 그리고 인정서 들이 빼곡히 벽면을 장식한 작업실은 류철규 명장의 실상을 읽기에 충분하다. 현재 대한민국 명장협회 대전지회장으로 작품전시회 등 분주한 활동을 하고 있다.

“험난한 길을 걸어 왔음에도 평온한 인상은 불심으로 수련한 마음의 결과로 기능만의 명장이 아니라 인간자체도 명장인 진정한 이시대의 장인”이라고 말하는 서예가 元文熙(중구 태평동)선생의 인물평에서 성호사의 30년 명성을 이어온 인장 명장 연재 류철규 사장의 외길 인생을 읽을 수 있었다.

◈ 연재 류철규 명장(烟齋 柳鐵圭 名匠)

★ 1970年 李碩成 先生 門下 10年間
★ 1980년 개업 現 성호사 운영
★ 대한민국 인장공예 명장(03-13호)
★ 대한명인 인장공예 명인(06-68호)
★ 일본 1급 인장 감정사
★ 국가 기능검정 인장공예기능사 심사위원 (12회)
★ 대한민국 명장 (검토) 심사위원
★ 대한민국 국새 모형공모작품 시사위원
★ 한국서예협회 충청남도지회 초대작가
★ 한국서화작가협회 초대작가
★ 대한민국고불서화협회 초대작가
★ 연재 전각, 서각 연구실 (현)

◈ 수상경력

★ 국무총리 표창
★ 내무부장관 표창(2회)
★ 대전광역시장 표창 (2회)

◈ 성호사

★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286-1 (충남도청 앞)
★ TEL : 042-226-9019
★ FAX : 042-226-9018
★ Mobile : 010-4411-9019

 

● 印章 : (인장을 예술적 감각으로 승화)
印章을 소중한 寶具로 여기는 것은 方寸의 印章이 寶物스럽기도 하지만, 그 印章의 魂을 지닌 無限한 可能性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것이며, 그 사람의 운명을 행운으로 이끄는 작업인 것이다.

● 印章 : 刻과 書의 조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장은 작은 공간에 우주를 새기는 작업으로 옛 말씀에 大哉心乎 萬靈之府 妙印交易之門 이라고 했으니 “크도다 마음이여 만령의 곶집이요 묘하도다 印章이여 교역의 문이로다.”
印의 造化가 興亡盛衰로 이어진다고 믿어 왔기에 표의 문자인 한자 문화권에서 사람의 이름만큼 이나 중요시 했던 것이 바로 인장문화이다.

● 篆刻 :
전서를 주로 인장에 새기지만 문자와 재료의 대상은 한정하지는 않는다. 예부터 권력이나 신분을 상징하는 信標(신표)로서 지닌 사람의 품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예술품으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하였다.
용도는 御寶(어보), 官印(관인), 職印(직인), 私印(사인), 서화에 찍는 落款(낙관), 책에 찍는 藏書印(장서인)등 용도와 쓰임새에 따라 모양새도 달라지며 새기는 전각은 서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금석학에 대한 지식을 기본으로 한다.

● 書刻 :
서각은 文字(문자)나 繪畫(회화)를 記錄(기록)하여 길이 後世(후세)에 남기려고 한 행위로써 木材(목재)나 다른 材質(재질)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예술이다.
대개 붓으로 표현한 문자를 원본으로 하며 칼로서 표현욕구(表現欲求)를 한 것이 서각예술이다.

 
     
 
 

조병무, 경영학 박사, 경영지도사, 소상공인 진흥원 대전 세종 충남 본부장, 대전상의 경영자문위원, 대전세종 충남 사회성 향상 교육 후원회장, 한남대 겸임교수, 저서 : 허리를 굽혀야 돈을 줍는다. 돈버는 길목은 따로 있다. 이메일: dr11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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