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 가다보면 세상이 보인다
돌아서 가다보면 세상이 보인다
  • 송두범
  • 승인 2015.09.25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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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범칼럼]추석 귀성길, 느리지만 재미있게 가는 길

   영평사로 이어지는 출근길은 느리지만 계절의 변화를 돌아볼 수 있어 힐링이 되고 있다.
필자는 세종시 첫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공주시에 위치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첫마을은 세종시 승격 이전만 하더라도 행정구역상 연기군 송원리였다. 연기군이 충청남도에 속한 기초 자치단체중의 하나였기에 업무상 자주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금강과 어우러진 너른 들판이 인상적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첫마을이 입지하면서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옛날 연기군 시기에 각인된 풍경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첫마을에 입주하기 이전에 살았던 대전에서 공주까지의 출근길은 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거의 매일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고속도로를 이용했고,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다보니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감상할 시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바빴으며, 퇴근시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첫마을로 이사 온지 3년이 지나 뒤돌아보니, 우선 출근에서 변화가 있었다. 직장과의 거리가 가까워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출근길은 늘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 된 것이다.

필자는 가능하면 빨리 갈 수 있는 1번 국도를 이용하여 출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빠르긴 해도 재미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신 첫마을~한국난방공사(천연가스발전소)~영평사입구~봉안리로 이어지는 691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공주로 간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은 가로수들이 붉은 색으로 변해가는 모습, 밤이 익어가고 대추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도로변의 축사로 인해 악취가 나기도 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4계절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주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 길을 통해 출근한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때때로 출근하기 싫을 때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필자 역시 그럴 때가 왜 없을까마는 이 길에 들어서면서 그런 생각은 호사스런 생각이 되어버린다. 그저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 길을 통해 출근하면서, 오늘은 직장에서 또 어떤 의미 있는 일이 나를 기다릴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출근길은 오늘 하루 어떻게 근무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짧은 출근길이지만, 하루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한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분명히 그러한 사회인 것은 맞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항상 남보다 빠르게 가는 것이 미덕이었고, 경쟁을 통해 이겨야하는 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우리는 오로지 목표달성을 위한 최단거리와 넓고 빠른 길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길을 가면서 펼쳐진 아름다운 산과 강, 들판은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만 보고 질주해온 삶은 과속을 낳았고 과속은 늘 사고로 이어졌다. 한번쯤 쉬어가거나 돌아가는 길을 통해 뒤돌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에는 넓은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좁고 울퉁불퉁한 길도 있는 것이다.

넓고 평탄한 길을 과속하여 달려온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혹 끝없는 낭떠러지는 아니었던가?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은 아니었던가? 이제 돌아가더라도 사색하고 성찰하면서 길 앞과 길 옆에 펼쳐진 풍광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갈 때도 되지 않았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토요일 일요일을 쉬면 언제 일할 것이냐고 다그칠 것인가?

한 번 쉬었다 가다보면 왜 우리가 그렇게 과속하며 달려왔던가를 후회하게 된다. 꾸불꾸불한 길이 주는 매력은 그 길을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매일 고속도로를 달리던 사람은 좁고 꾸불꾸불한 이차선 지방도가 불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곧 추석이다. 많은 세종시민들이 낳아주고 길러준 고향을 향해 떠날 것이다. 그동안 질주했던 고속도로도 귀향민들로 북새통이 될 것이고, 차량들은 거북이 걸음이 되겠지만, 그들은 가야할 고향이 있기에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더디 가더라도 가야할 고향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송두범, 영남대 졸업, 행정학 박사(지역사회개발전공), 충남발전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 및 충남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행복도시건설청 세계최고도시만들기 포럼위원, 세종문화원 이사, 이메일 : dbsong@cdi.re.kr

빠르게 가고 먼저 가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느리게 가더라도 분명하게 가야할 목표가 있다면, 그 길이 훨씬 더 매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고향 가는 길, 가을이 오는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충분히 즐기면서, 천천히 힐링하면서, 시인이 되어 오시면 좋겠다. 그러면 세종시로 돌아온 우리의 삶도 한층 더 여유롭고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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