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날 여기에 두고 갔을까"
"엄마는 왜 날 여기에 두고 갔을까"
  • 구은영
  • 승인 2015.07.15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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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전동초 구은영 교사, "나를 변화시킨 24명의 새싹들"

 
   전동초 구은영 교사
매일 아침 등교시간 학교의 정문을 들어서면 저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우와 선생님 오셨다.”
“선생님! 있잖아요. 오늘 국어시간에는 무슨 공부할 거예요?”
“선생님! 어제 숙제를 못했어요. 깜박하고 수학 익힘책을 못 챙겼어요.”

웃음을 잔뜩 머금은 발랄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경쟁하듯이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내가 대답을 할 틈은 없다.
“응.”
“그래, 괜찮아.”
그저 미소를 띈 얼굴로 아이들의 눈을 맞춘 채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공감만 해 줄 뿐이다.

교육경력 13년 동안 줄 곧 고학년을 맡아왔던 내가 올해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1학년을 맡게 되었다. 처음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크게 다가오듯이 나에게도 1학년이란 아이들의 존재는 엄청나게 컸다.

시골학교이지만 통합학급에서 공부하는 2명의 아이들을 포함하여 24명 많은 수의 아이들이 입학을 했고 저마다의 사연들을 가진 아이들이었기에 과연 담임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3월 초에는 내가 학교에 출근하는 순간 24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질문을 하고 나는 그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 활동 시간이 온통 질문 시간으로 바뀌었으며 어떤 날은 1교시가 훌쩍 지나기도 했다. 업무로 교실을 잠깐 비우면 우리 아이들은 나를 찾기 위해 온 학교를 헤매고 다녔고 공부 시간에는 말없이 일어나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등 수많은 이유로 아이들이 교실을 돌아다니곤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상담을 통하여 우리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의 모습을 알아보았다. 우리 반에는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유달리 많았다. 아직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담이 몇 건 있었다.

‘할머니, 우리 엄마는 왜 날 여기에 두고 갔을까요?’
나와 상담을 했던 할머니께서 입학식 날 저녁에 손녀가 위의 질문을 했다고 하셨다. 아마도 손녀가 입학식을 할 때 젊은 엄마들이 많이 온 것을 보고 물어본 것 같다고 하시면서 “선생님, 그날 저녁 우리 손녀와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라는 말씀을 하실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또 베트남에서 온 한 엄마는 서툰 한국말로 “선생님, 우리 아이 많이 아파요. 어릴 때 수술 두 번 했어요.” 라며 눈시울을 붉혔고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셨다.

본인이 공장을 다녀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한국어로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없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늦어졌다고 걱정을 하셨다.

또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정이 그리워 그것을 감추고자 과잉행동을 하는 아이,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릴 때 심하게 아파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 이렇듯 우리 반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다짐하였다. 스물 네 명 작은 새싹들의 엄마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이다.

상담 후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길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였다. 우리 학교는 생태교육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각종 풀과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고 여러 종류의 새들도 키우고 있으며 연못, 텃밭 등이 있는 전원학교이다.

 
나는 학교환경을 활용한 생태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프로젝트 학습을 계획하였다. 첫 번째 활동으로 텃밭 상자에 상추 심기를 하였다. 자신의 상추에 이름을 짓고 물을 주며 ‘잘 자라’, ‘사랑해’등의 말을 해주었다. 나와 아이들은 학교 오는 재미가 하나 늘었다. 아침마다 자신의 상추에게 들러서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활동으로 자신이 심고 싶은 식물과 화분을 선택하여 직접 흙을 만지며 1년 동안 키울 자신의 화분을 만들어 보았다. 우리 반 창가에는 24개의 화분들이 주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줄을 지어 서 있다.

세 번째는 숲 체험 활동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분기별로 계획되어 있으며 5월 초에는 가까운 금강 수목원에서 봄을 체험하였다. 아직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인내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생태교육 프로젝트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마음 밭을 가꾸기에 더없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우리 반 아이들은 커가는 상추를 보며 맛있는 삼겹살에 상추를 싸 먹을 날을 기다리고 숲 체험을 통해 작은 풀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태도를 기르고 있다.

입학하고 4개월 가량 흐른 지금은 아침 출근 시간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해 주기 위해 힘을 썼다면 지금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눈을 맞추고 웃어주며 인정해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선생 가슴으로 들어오고 선생이 아이들 가슴으로 들어가야만 서로를 이해하는 가운데 배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지금 나는 아이들 가슴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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