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 서예와 함께 보냅니다”
“여생, 서예와 함께 보냅니다”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2.01.04 11:19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인]금남서예교실 터줏대감 청오(靑吾) 유근(柳根) 선생

 

   청오 선생이 임진년 새해를 맞아 용비재천을 쓰고나서 파안대소하고 있다.

“서예는 나의 영원한 취미야, 일요일에도 나와 글을 써”

올해 86세의 서예가 청오(靑吾) 유근(柳根) 선생은 연기군 금남면 축산리 출신이다. 서울 등 객지에서 경찰공무원과 서예학원 등을 운영하며 직장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10여 년 전 귀향했다.

지난 2일 오후 금남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금남서예교실에는 묵향이 진하게 풍겼다. 10년째 터줏대감처럼 서예교실에 거의 매일 나오는 유근 선생이 임진년 새해를 맞아 글씨를 쓰고 있었다.

유 선생은 나이를 무색하게 힘찬 필치로 ‘孝家忠國(효가충국: 가정에서는 효도하고 나라엔 충성한다)’을 쓴 다음, 흑룡의 해를 맞아 ‘龍飛在天(용비재천: 용이 날아 하늘에 있다)’를 써내려갔다.

   청오 선생은 사람들에게 항상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라고 역설한다.  

유근 선생은 한평생 글을 배우고 한지에 글씨를 쓰면서 보낸 일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친 유관호(柳觀浩)씨의 10남매(8남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유 선생은 어려서부터 서당을 다니며 한문을 익혔다.

일본인 선생이 창씨개명 요구하자 학교 그만두고 고향 떠나 한학공부

 

일제시대 금남초등학교 4학년 때 서슬 퍼런 일본인 선생이 집에 가서 일본식으로 창씨를 개명해오라고 하자,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당시에도 상투를 틀고 계신 유학자인 아버지는 크게 꾸짖으며 “학교를 그만 다니고 경상도로 가서 한문공부나 해라”고 하여 3년간 스승을 모시고 한학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이 때 스승으로부터 서예와 학문을 많이 배우고 고향에 돌아와 19세에 결혼식을 올렸다. 유 선생은 현재 금남면 축산리에 같이 사는 부인 이순규(85) 여사와의 사이에 3남2녀를 두었다.

유 선생은 22세 때 공주군 반포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2년을 근무하다가 경찰에 투신하여 16년간을 충남경찰청과 서울경찰청에서 복무하고 경감까지 지냈다. 경찰에서 퇴직한 후엔 서울 인사동에서 6년 간 서예학원을 운영하기도 한, 유 선생은 이천의 도자기 공방에서 글씨와 그림을 쓰는 등 평생 직업이 글씨 쓰는 일과 연관됐다. 경찰에서도 주로 인사계에 근무하며 차트 글씨 등을 많이 썼다. 그는 선친으로부터 교육받은 대로 사람은 반드시 학문을 익혀 깨달아야 한다는 신조로 5남매 모두를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유 선생의 뒤를 이어 큰 아들 유태희 씨가 화가로 활동 중이며, 둘째 아들 유남희 씨는 경찰로 근무하다가 사업을 하고 있다.

12대조 할아버지 유연장군 뜻 이어 막내아들 독도경비 자원 근무

    금남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서예교실

무엇보다 막내아들 유단희 씨가 현재 경찰로 울릉도경비대장을 맡아 독도를 지키고 있어 뿌듯하다. 유 선생의 12대조 할아버지인 유연(柳衍) 장군이 조선 초기에 독도수비대장을 맡은 것이 역사에 기록됐는데 이를 알고 막내아들 단희씨가 선조의 뜻을 이어받아 독도경비를 자원한 것이다.

유 선생은 항상 자식들은 물론 이웃들에게 효가충국(孝家忠國)을 가훈처럼 얘기한다. “부모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각 개인이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하며 요즘 나라와 부모의 소중함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속내를 비쳤다.

허종행 유도회 연기군지회장은 “청오 선생은 항상 오전엔 금남면 게이트볼장에서 체력을 단련하시고, 오후에는 서예교실에서 글씨를 쓰신다”며 “남들이 안 나오는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어김없이 나와 글씨를 쓰시고 좋은 글귀를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주신다”고 칭송했다.

최달식 서예가는 “연로하신데도 성실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 모습에 후배들이 감명을 받는다”며 “연세에 비해 서체가 강직하여 평생 수련하신 내공의 힘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 사라지는 게 가슴아프다 ...화투만 치지말고 공부했으면"

                 서예교실 회원들의 모습 

“황천길이 가깝다보니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청오 유근 선생은 “부락마다 노인들이 화투만 치는 것도 참으로 볼썽사나운 일”이라고 지적했다.“아무리 치매를 예방한다고 하지만 다문화시대에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데, 화투만 치지 말고 젊은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인 “황금 백만냥이 자식 가르치는 일보다 못하다”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가문 있는 집안에서는 “굶어죽어도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여겼다고 역설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인심 잃지 않고 덕을 쌓으며 즐겁게 살아야”

요즘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씀을 부탁하자 “젊어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무능력하다”는 ‘小而不學(소이불학)이면 老而無能(노이무능)’과 ‘積善之家必有慶(적선지가필유경:착한 일을 하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로운 일이 있다)’을 얘기한다. 유 선생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남에게 인심을 잃지 않고 손가락 받지 말아야 한다”며 “덕을 쌓아서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올 봄에 서예교실 회원들과 함께 막내아들이 근무하는 독도에 가기로 약속했다는 유 선생은 귀가 멀어 불편한 것 말고는 사는 동안 부지런히 운동하며 취미활동을 하는 게 건강비결이라고 밝혔다.

유근 선생은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이 최선을 다해 자기가 목표하는바 꿈을 이뤄야 한다”며 서예 글씨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경자 2012-02-01 16:43:56
덕을 쌓으며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활력소가 넘치세요~~~

날으는꽃등심 2012-01-11 00:32:07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뿐~~~늘 최선 다하는 당신이 짱입니다^^

정우 2012-01-09 10:17:06
연세가 많으신데도 최선을 다해 멋지게 기분 좋게 사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최달식 2012-01-07 16:47:35
나도 저분처럼 남은 여생 살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