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힘을 믿어주세요, 감독님"
"역사의 힘을 믿어주세요, 감독님"
  • 강병호
  • 승인 2015.05.21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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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의 문화확대경]영화 '순수의 시대'...여말선초 '왕자의 난'배경

   여말선초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한 '순수의 시대'
우리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들이 몰려온다. 작년에는 <역린>, <해적>, <군도>, 올해는 <순수의 시대>, <간신> 드라마로는 <정도전>, <징비록>, <화정>등이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작년에 방영된 KBS의 드라마 <정도전>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 감독 안상훈은 <블라인드(2011)>, <레인보우(2010)>를 연출했고 주연은 신하균(김민재), 장혁(이방원), 강한나(가희), 강하늘이다.

왕좌를 둘러싼 권력욕의 피비린내 나는 기록, 여말선초(麗末鮮初) ‘왕자의 난’이 핵심이 되는 영화 <순수의 시대>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이 보태진 ‘팩션사극’이다.

스토리의 배경은 조선 건국기, 정몽주와 고려 충신들의 피를 뿌리며 개국의 실질적인 일등공신인 이방원(장혁), 하지만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은 막내 동생에게 세자책봉을 한다. 뜨거운 울분을 삼키는 이방원. 곧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 왕자의 난을 부른다. 여기까진 역사고 사실이다.

정도전의 사위이며 태조의 사위 진(강하늘)을 아들로 둔 김민재(신하균)는 여진족과 왜구로부터 신생 조선의 국경선을 지켜낸 공로로 군 총사령관이 된다. 여진족을 어머니로 하여 기반이 약한 김민재는 정도전과 이성계에게 정치적으로 맹종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연히 어머니 젊었을 적 모습을 닮은 기녀 가희(강한나)를 소실로 들이지만 사실 가희는 이방원의 첩자로 아들 진에 대한 복수를 위해 김민재의 집에 들어온 것이다. 기녀 가희는 <김민재 장군>, <왕자 이방원>, <태조 이성계의 사위 진> 세 명의 남자들이 모두 갖고 싶거나 지키고 싶은 뜨거운 여자다.

영화가 음식이라면 <순수의 시대>는 냉면에 식초를 스테이크에 소쓰를 너무 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경우 쉐프는 재료가 가진 맛과 풍미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 스토리로는 밋밋했는지 아니면 불안했는지 너무나 많은 섹스씬, 노출씬이 연결되는 것이 <순수의 시대>의 흠결이다. 이렇게 많은 노출씬이 계속된다면 의상이 필요 없는데 굳이 시대 설정을 조선으로 할 필요 가 있었을까?

<순수의 시대>에서 가희 역을 맡은 강한나..., 개성 있는 마스크고 몸을 던지는 열연은 좋지만 이번 작품이 처음 주연인 여배우가 원탑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는 솔직히 역 부족이었다. 대사도 연기 디테일도 아직까지는 익지 않았다.

역사 디테일을 스토리에 더 전개하고, 정사씬을 지금 보다 반 정도 분량으로 끌고 가며 원재료에 충실했었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정도전과 이방원 갈등 구조에서 풀어낼 수 있는 디테일이 더 많았다. 자연히 등급도 19금을 15금 정도로 낮췄다면 완성도 있는 작품이 되고 흥행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실제는 다른 장르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필자는 역사서를 원문으로 읽을 수 있는 세대, 즉 신봉승 선생과 같은 세대가 제작 전면에서 물러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원서를 읽는 것과 번역서로 읽는다는 것은 맛이 다르다.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한계에 있다. 우리는 우리 역사지만 한글로 번역된 버전을 보고 있다.

   
   
 
강병호, 중앙대 졸업, 중앙대(MBA), 미국 조지아 대학(MS), 영국 더비대학(Ph.D),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대전문화산업진흥원 초대, 2대 원장, 한류문화진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문위원, 배재대 한류문화산업대학원장, E-mail :bhkangbh@pcu.ac.kr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소재를 무협과 섹스로 채워야 하는 우리 문화 콘텐츠의 한계가 느껴져 씁쓸하다.

꼭 관객과 흥행, 제작자만 비난할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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