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설레임
  • 이태근
  • 승인 2015.04.09 14: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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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근의 조각에세이]모두 고만 고만한 학생들 틈에...

 
재 료: 대리석
제작년도 : 2007년
크 기 : 400×350×1090(mm)

초등학교 시절.
시골의 조그만 학교에 다니던 새까만 얼굴의
나에게도 가슴 설레이는 일이 생겼다.
모두 고만 고만한 학생들 틈에
서울에서 전학 온, 피부가 백옥 같이 하얗고
곱던 여학생이 오전 포크댄스 시간에 나와 짝꿍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볼 기회가
주어졌는데, 수줍움 많던 나는 그 여학생의 손끝만을.. 아주 조금만 잡을 수 있었다.
말수도 없는데 이상하게 하얀 피부가 동경이 가던 그 여학생의 부드럽고 따뜻했던 그 손길이 내 조그만 손 끝에 닿았을때, 가슴에선 심한 요동이 몸부림 쳤다.

어느날,
시골집 뒤꼍에 커다란 은행나무 한그루 가지치기 하는데 팔뚝만한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와
버리기 아까운 마음에 주워들고 골방에 들어가 호랑이 한 마리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고, 밥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도 성의 없는 대답으로 무시한채 어느덧 형태가 완성이 되어갔다.
모두 다 조각하고 나서 나의 첫 작품을 바라보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 그 자체였다.

인생 중 생물학적으로 제일 팔팔할 나이인 20대 후반,
군 생활 말년에 대학교 전공실에서 처음 마주쳤던 여학생을, 일년여간 온갖 물량공세와 애정을 쏟아 부어 독신주의자이던 그녀를 내편으로 만들어 오빠라는 호칭을 얻어 결혼에 골인하던날,
설레임과 현기증으로 다리마저 후들거리던 그날!
이제 막 결혼을 마치고 꿈 같은 신혼의 달달함에 정수리까지 푸욱 절여진 젊은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사람을, 저녁상 정성들여 차려놓고 기다리다 마음이 앞서 저만치 동네 어귀까지 마중나가 남아있는 도착 시간을 쭈욱 잡아 당겨 본다.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애가 타게 기다리는 마음.

설레임이다! 요즘 말로 심쿵~!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하는,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순수하고 가슴벅찬 설레임이다.
시기적으로 3월은 용수철처럼 톡 튀어 오르는 용솟음이다.
이 봄도 어느새 빠꼼히 새순같은 설레임을 톡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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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산스님 2015-04-16 13:55:51
초등의 시절에서 청년으로 돌아 가 보는 잠간의 순간이었으나 스님도 지난 날을 돌아 켜 보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어 좋았습니다. 순수해서 ... 득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