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한이 서린 은행나무
병자호란 한이 서린 은행나무
  • 임영수
  • 승인 2012.07.2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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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의 세종을 만나다]방축리...임헌회 선생의 숭덕사, 덕성서원

   은행나무
일곱번째날 - 방축리(方丑里)

방축리는 백제시대 두잉지현에 속했으며 조선말엽에는 연기군 남면의 일부였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웃마을을 병합하여 방축리(方丑里)라 하고 연기군 남면에 속하였다.  에전에는 관대마을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황우(黃牛)가 외양간에 갇혀있는 형국이라 하여 ‘방축리’라 불렀다고 하고 또한 방죽이 있었으므로 방축이라 부른다고 한다.

재영 : 아빠 저기 언덕에 세워진 정려는 누구의 정려이지요?

아빠 : 가까이 가서 살펴볼까. 저곳은 정려가 있다고 해서 ‘정자말’이라고도 불리는 곳이거든.

재영 : 정려의 주인공에 대하여 설명해 주세요.

아빠 : 그래. 이곳 정려는 열녀문으로 전오복(全五福)의 처 창녕성씨(昌寧成氏)와 전오륜(全五倫)의 처 결성장씨(結成長氏)의 쌍정려(雙旌閭)이지.  이곳 정려는 1772년(영조48년)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어. 성씨와 장씨는 옥천전씨 전오복과 전오륜 형제의 부인으로 동서간이었어.  먼저 창녕성씨는 전오복(全五福, 1714~1735)의 처로 남편이 병을 얻어 병석에 누워 고통스러워하자 몹시 슬퍼하며 잠도 자지 않고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는 동시에 하늘을 우러러 자신이 대신 병을 앓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 그러나 성씨의 간호와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죽자 바로 그날 그녀는 독약을 먹고 남편을 따라 자결했어.

재영 : 결성장씨는요?

아빠 : 열녀 결성장씨는 전오복의 동생 전오륜(全五倫, 1717~1753)의 처로 형인 전오복이 죽은지 18년이 지난 1753년 전오륜도 몹쓸 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지. 장씨는 매일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고 5일간 밥 먹는 것도 거부하고 7일 동안 찬물로 머리를 감으며 칠성을 향하여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나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남편의 입속으로 흘러 넣었지.

그래도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장씨는 남편이 죽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다는 뜻을 시부모에게 글로 남기고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어. 그 후 남편인 전오륜도 약 한달 후에 병환으로 죽었지.  이와 같이 두 형제의 부인이 모두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으니 유림에서 그들을 추앙하여 국가에 포상하도록 상소를 올려 쌍열녀문을 세웠어. 1793년(정조17년)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정려기가 있어.

   덕성서원
재영 : 남편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다가 결국 목숨까지 버리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인 것 같아요.

아빠 : 그래. 조선시대 부부사랑은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이었지. 너의 말대로 요즘 사람들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이혼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자 저쪽에 있는 덕성서원으로 갈까.

재영 : 선원 앞에 있는 은행나무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아빠 : 이 은행나무는 이곳 출신 임엽(林葉)이 심은 나무란다. 임엽은 20세에 군자감 주부 (軍資監 主簿)를 지냈지. 머리가 비상하여 의(義)에 두드러진 사람이었는데,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죽산(竹山) 싸움에서 용감하게도 오랑캐와 피 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여 단신분투 하였으나 역부족으로 전사하고 말았지.  오랑캐들은 용맹하게 싸운 그가 미워서 죽은 시체를 찾아내어 불태워 버렸으니 그가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지. 그 후 후손들이 싸움터에 찾아가 불탄 시체의 재를 한주먹 가지고 와서 이곳에 초혼(招魂 - 묘를 만들고) 제사를 지냈는데 신기하게 병자년(丙子年)이 되면 은행나무의 나뭇잎이 나지 않는다고 전하고 있어.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410여년이 되였어.

재영 : 참 신기하네요. 나무도 주인을 알아보는 격이네요.

   덕성서원

아빠 : 자 이제는 덕성서원을 돌아볼까.
덕성서원에는 숭덕사가 있는데 처음에는 입안사(立安祠)라 하다가 1885년(고종22년)에 관북유림(關北儒林 - 이북지방의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한 것이 숭덕사(崇德祠)이지.  이곳은 대사헌 임헌회(大司憲 任憲晦)선생을 모신 곳으로 처음에는 이북에 위치하여 일제의 침략과 특히 6․25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져 그 곳을 갈 수 없으니 전국의 유림들이 이곳 방축리에다 1978년에 숭덕사와 덕성서원(德星書院)을 건립하고 7현(七賢)을 모시게 되었지. 이곳은 임헌회 선생께서 살았던 곳으로 많은 제자를 배출한 곳이었어.

재영 : 임헌회 선생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어요.

아빠 : 임헌회(任憲晦, 1811~1877)선생은 조선말기의 학자로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자는 명로(明老)․중명(仲明) 호는 고산(鼔山)․전재(全齋)․희양재(希陽齋)었어.  1811년에 지금은 천안인 직산(稷山) 산음리(山陰里)의 외가에서 태어났지.  1836년(헌종2년) 감시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복시에서 떨어지자 송치규(宋穉圭)를 찾아가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1842년 홍직필(洪直弼)의 제자가 되었지.

1858년(철종9년) 조두순이 “명가의 후예로서 효우를 힘써 행하면서 조용히 거처하며 평소 배양한 뜻을 지키고 있다.”고 천거하여 효릉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어. 이듬해 판부사 김좌근(金佐根)이 경술(經術)과 행의(行誼)로 천거하여 다시 활인서 별제(活人署 別提), 전라도사, 군자감정 등의 벼슬이 주어졌으나 모두 사양하였으며 1861년에는 다시 조두순의 천거로 경연관에 발탁되었으나 역시 소를 올려 사직하였어.

그러나 조정의 부름이 끝이지 않자 하는 수 없이 벼슬길에 나갔는데 1864년(고종1년)에는 장령, 집의, 장악원정 등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호조참의가 되었지. 이때 만동묘(萬東廟)의 제향을 폐지하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절대 부당함을 거듭 상소하여 다시 제향하게 하였어.  1871년 공주삼기(公州三岐 - 현 연기군 남면 방축리)로 이거하였고 2년 뒤인 1873년에는 공주 명강동(明剛洞)으로 옮겨 살았어. 이곳은 공주 마곡사 가는 길목이지.

   숭덕사

1874년 이조참판에 임명하고 승지를 보내어 나오기를 청하니 상소하여 사직하였고 그 뒤 대사헌, 좨주 등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나가지 않았어. 1877년 성전(星田 - 현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서 세상을 떠났지. 그는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일찍이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의 학문을 계승하여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학설은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는 이항로 문하의 김평묵과 대립하게 되어 1862년 서신으로 성리학에 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지.

또한 임헌회 선생은 천주학(天主學)을 극력 배척한 인물로도 유명하였어.  1902년 윤용선(尹容善)의 주청으로 정2품 자헌대부 내무대신에 추증되었고 1908년 문경(文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도(道)와 덕(德)이 있고 널리 글을 읽음을 문(文)이라 하고 이른 이침부터 밤늦게까지 공경하고 경계함을 경(敬)이라 하였어.

재영 : 숭덕사에 배향되어 있는 7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아빠 : 임헌회 선생은 소개하였고 두 번째 배향인물이 전우(田愚, 1841~1922)선생으로 21살에 신응조(申應朝)의 권유로 임헌회선생과 사제의 의를 맺고 임헌회선생이 죽을 때까지 아산, 전의, 연기, 진천, 상주, 문천 등지에 따라가면서 학문을 연마하였어. 세 번째 인물은 이재구(李載九)로 호는 불궤재이지. 임헌회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 한 뒤 도학에 전력함과 동시에 14년간 경전탐구와 육영사업에 종사하였어.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교육하였던 자교암이 조치원 봉산리에 있지.

네 번째는 김준영(金駿榮)으로 간재 전우에게 글을 배운이야.  다섯 번째가 이유흥(李裕興)으로 병암 김준영에게서 글을 배웠고,  여섯 번째가 조홍순(趙弘淳)으로 간재 전우에게 학문을 배웠지.  마지막 임헌찬(任憲瓚)은 간재 전우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예절과 청빈을 실천하였어. 금도 임헌회 선생의 제자와 후손들 그리고 유림들이 덕성서원에 찾아와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제를 지내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지.

   숭덕사

     
임영수, 연기 출생, 연기 향토박물관장,국립민속박물관 전통놀이 지도강사,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이메일: gh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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