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다양성 존중받을 때 높아져
행복지수, 다양성 존중받을 때 높아져
  • 강수인
  • 승인 2014.09.24 17: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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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경제 성장이 개인의 성장은 아니랍니다"

 

   아이들 스쿨버스를 타는 모습인데 언제고 먼저 간 아이들 순서대로 타더군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것도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저런 모습이 문화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세계 135개국 중 74위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전에도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 그것도 압도적이라는 것에서 그 심각성을 걱정하던 터였다. 매년 1만 4천명이 자살하는데 학생이나 노인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여성보다 남성이 3배 정도 많다고 한다.

 

물론 어느 사회나 자살이 일어날 수 있지만 우리보다 더 못살고 더구나 전쟁 중인 나라보다도 행복지수가 낮다는 사실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행복지수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원하는 것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다. 행복을 경제적 가치, 즉 돈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행복하고 만족한다는 것은 금전적인 측면 이외의 여러 요인이 있다. 또 개인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행복함을 느낄 수 없다. 사회 전반에 깔려진 공평함과 배려가 있어야 행복해 질수 있다. 아무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려 해도 과시적이고 형식적이며 외모지상주의를 전부인양 떠벌이는 이웃이 있는 한 상대적 박탈감에, 부러움 보다는 질투로 삶이 더 지치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듯이 사람마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래도 세상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위가 높은 권세가도 돈이 많은 재벌도 말 못할 아픈 가족사를 한 두 개쯤은 안고 사는 모습을 보면 세상살이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돈이고 권력이라고, 그것을 자랑삼아 있는 척하는 꾼들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이들로 인해서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 나라의 문화적인 의식수준을 보려면 운전문화를 보면 안다고 한다. 언어도 서투른 미국에서는 마음 편하게 운전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운전할 때는 불안하고 때론 공포감마저 느끼고 항상 다른 운전자와의 신경전에 시달려야 한다. 운전을 하고 나면 마치 한바탕 레이싱을 하고 온 것처럼 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

‘배달의 민족’의 후예(?)라는 오토바이 부대, 곡예운전의 마술을 부리는 총알택시의 불법 행위에 일반 차량들도 가세하며 모두 화가 난 듯 경쟁한다. 보복운전이 난무하고 카메라가 있는 데서는 기막히게 속도를 맞추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선진시민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나’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나는 여행중에 잠시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입니다. 우리에게는 흔하디 흔한 계곡이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정겨운 맛을 느끼는 장소가 흔치 않더군요. 크고 작은 나무, 쓰러진 고목들이 어우러진 그곳이 지금도 기억에 납니다.

그런 이중적인 얼굴이 요즘 끊이지 않는 사고의 주범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는 데서만 잘하는 척하는 사람들, 대충 술 한 잔에 돈 몇 푼에 양심을 파는 사람들 때문에 세월호도 장성요양병원도 임병장과 윤일병 사건도 발생한 것이다.

 

누구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얘기하면서 막상 본인의 얘기로 들어가면 힘들고 외롭고 사랑에 허기져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성장이 바로 개인의 성장은 아니며 문화 성장은 더더욱 아니다. 이제는 좋은 이웃이 되어보자. 수려한 문장이 아닌 몇 마디만 더듬어도 눈을 마주치며 기다리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이웃, 부족한 상대방을 보며 내 부족함을 찾고 겸손하게 다가가는 이웃, 순서대로 규칙을 지키며 공평함을 실천하고 갈등을 만들지 않는 그런 이웃이 되어보자.
 
자살은 현실이 힘들고 괴롭고 더 나아질 희망이 없을 때 선택하는 것이다. 앞날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과 똑같기를 강요받는 획일화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자살률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공평한 사회, 다양함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만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이다. 잘나고 큰 나무 하나로 숲을 이룰 수 없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크기도 굵기도 잎사귀 모양도 다 다른 나무들이 어우러질 때 건강한 숲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강수인대전출생,대전여고,충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졸업,우송대 외식산업 최고경영자과정 수료,우송대 Culinary MBA 석사, 박사과정,전)침례신학대학 영양사,전)카페 어니스 대표(창업),전)대전보건대 외래교수,현)우송대 외식조리학부 초빙교수,KBS, 아침마당(대전)패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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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마을 2014-09-29 15:27:00
옳은 얘기입니다. 행복이라는 게 정말 건강한 생각을가지고 건강하게 행동할 때 나오게 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