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고 배를 채우라” 말씀에 갈등
“마음 비우고 배를 채우라” 말씀에 갈등
  • 김장수 유성태극권전수관장
  • 승인 2014.07.25 14:59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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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무인들, 중국무술 고향가다 <5> 도덕경 탄생지 함곡관

 높이가 33.3m나 되는 거대한 노자상 앞에서 태극권 동작을 펼쳐보이는 필자  
노자의 도덕경을 알아도 함곡관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도덕경이 너무 심오하여 탐구하다 보니 모두가 도덕경에 심취하여 그렇다. 도가(道家)나 도교(道敎)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마도 그럴 것으로 본다. 나 역시 도덕경 관련 서적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도덕경을 알고자 하시는 분은 구체적인 내용은 훌륭한 분들의 강의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내가 아는 미미한 지식의 도덕경만 알리고자 하니 양해 바란다.

보통 도덕경(道德經)은 왕필(王弼, 226~249)의 주석본과 하상공(河上公 前漢 출생 사망 미상)의 주석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을 왕필의 주석본과 자기 경험에 바탕을 두어 강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내가 아는 도덕경은 하상공의 주석본을 참고하여 나름에 경험적인 것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전날 함곡관으로 가기 위해 호텔로비 카운터에다 오전 7시에 식사하기로 한 것을 다시 30분 일찍 부탁하였다. 철저한 O박사의 세부계획에 모두가 동감하며 용문석굴과 향산사 관광의 피로도 잊은 채 오전 6시 반쯤에 내가 호텔 구내식당에 갔을 때는 일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시에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함곡관을 향해 호텔을 나섰다. 함곡관은 낙양과 서안의 중간지점에 있는데, 처음 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다시 간다면 쉽게 갈 수 있겠지만 처음 가는 길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순탄하지 않았다.

   신 박사가 역안 대합실에서 도덕경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함곡관으로 가는 열차시간에 맞춰 나와 표를 사고 보니 약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나는 남는 시간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등산용 가방을 역내 상점에서 샀다. 가격이 싼 맛에 2개를 샀는데 귀국할 때까지 유용하게 활용했다. 역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신 박사님의 도덕경 강의가 있었다.

도덕경 3장인 안민장(安民章)이었다. 내용 중간에 ‘허기심 실기복(虛氣心 實氣腹)’ 문구에서 멈추었다. 쉽게 풀이하면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워라’라는 재미나는 내용이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하상공은 도덕경 81장의 제목을 달았다. 중국사람은 여행을 할 때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음식이다. 땅이 넓다보니 여행을 하다 먹을 것이 없어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내가 처음 중국무술을 배운 곳은 중국 동북지방인 흑룡강성 하얼빈이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여름철에 장마를 만나면 푸른 초원이 바다로 변해 열차가 도중에 가지 못해 하루 정도 물이 빠지길 기다렸는데 먹을 것이 없어 곤란했었던 기억이 있다. 병법에도 군사를 움직이기 전에 식량이 먼저 가야 군사가 움직인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워라. 허기심(마음을 비우다)은 맞는데 실기복(배를 채우다)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와중에 오 박사가 미리 준비한 ‘치맥(치킨 맥주)’과 함께 하면서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의미가 다가오는 순간 함곡관 열차가 들어온다는 신호에 모두 일어섰다.

열차에 몸을 실은 후에도 신 박사님의 도덕경 강의는 계속되었다. 마음은 비웠는데 배는 무엇으로 채울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요즈음 우리나라 한류열풍이 이곳 함곡관 가는 열차 안에서도 대단했다. 서로 서툰 중국말과 서툰 한국말이 교감하여 친절로 되돌아오는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낙양용문역에서 삼문역까지 약 2시간 정도의 거리를 재미나게 이야기하다 보니 순식간에 와버렸다. 삼문역에서 함곡관을 가기 위해서는 영보시까지 더 가야 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삼문역 앞에서는 영보시까지 직접 가는 버스가 없었다. 직접 가는 버스는 대로변 정류장까지 가야 하는데 삼문역 앞 버스터미널 안내인이 환승해 주겠다고 하여 안내인을 따라 올라 탔다. 역시 한류의 친절은 여기서도 계속되었다. 30~40분정도 가다 보니 어느 작은 도시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환승을 해야 된다고 하는 과정에 버스기사의 과잉 친절에 우리 모두 넋이 나가 10여 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버스 안의 중국인들은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환승버스기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올라 타서 5분정도 갔을까 일행 중 우명경(우슈공인 3단)수련생의 스마트폰을 차에다 놓고 내렸다고 하는 순간 신 박사님의 도덕경강의가 허기심이 여기서 작용을 하여 모두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약간의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순간 영보시에 도착하여, 함곡관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영보시에서 함곡관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됐다.

     태극권 수련생 우명경씨가 365개의 화강암으로 조성된 도덕경이 새겨진 벽면을 보며 걷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함곡관에 들어서니 전망이 그리 높지 않은 산세가 양쪽으로 성벽을 쌓은 것처럼 되어 있으며 그 중앙 통과하는 곳은 바로 함곡관이다. 낙양과 서안의 병참기지로 중국 중원에서 가장 요충지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초한지, 삼국지, 무협지에서 모두가 함곡관을 누가 넘느냐에 따라 ‘중원의 패권자’라는 말이 있다. 노자는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도서관장이었다. 나라가 기울어져 서쪽으로 가는 도중에 함곡관을 넘어야 되는데 문지기인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그냥 가시면 아니 되십니다. 그렇게 훌륭한 분께서 좋은 글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여 쓴 글이 바로 도덕경이다. 이에 노자는 상 하 2편 5,000자로 지었으며 그 후 노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가 없다. 그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외치면서 소국과민 (小國寡民)을 주장했다 한다. 만약에 윤희가 없었다면 노자 역시 알 수가 없었다. 노자가 함곡관에서 쓴 글이 도덕경이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다. 나름에 도덕경을 읽고 노자를 알지만 함곡관을 모르고는 도덕경을 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 숙연해진다. 

병참기지이며 요충지 함곡관 차지해야 중원의 패권자 된다

함곡관에 도착하면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생각보다 입장료가 싼 편은 아니다. 개표를 한 후 우리 일행은 걸어가도 되지만 시간관계상 셔틀을 타고 이동했다. 셔틀 종점에 내리면 노자상(老子像)이 나오는데 그 크기 높이가 33.3m나 되는데, 그 위상이 허탈감으로 겹쳐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리 현대판 관광차원이라고 해도 내가 보는 노자상은 무위의 소박한 노자상이었는데, 그 크기가 너무 커서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노자상 왼쪽에는 도덕경을 화강석에다 조각을 하였는데 200m는 족히 될 것 같다. 그 크기 또한 어마어마했다.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으로 되어있는데 365개의 화강암으로 조각하였다고 한다. 그 곳을 지나면 도가출원(道家出願)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입장료가 비싼 관계로 부분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관광객 입장에서는 보는 것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중국 도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도가출원의 입구
도가출원(道家出願) 입구에 들어서니 작은 상점(書店)이 있었는데 거기에 하나밖에 없는 죽간(竹簡) 도덕경(道德經)이 있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사고 싶었던 죽간 도덕경을 주저 없이 샀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보는 순간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뿌듯했다. 완서(完書)인 도덕경을 용문역에서 산 등산가방 속에 조심스럽게 담아 짊어지고 함곡관 관광을 마치고 영보역에서 화산행으로 열차에 오르니 서산에 해는 기울어 도덕경을 짊어진 나는 과연 이것이 道의 길인가? 라고 자문자답으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갖고 싶었던 죽간도덕경을 구입 한 후 지니고 있던 도복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함곡관의 기록에 보면 宋 崇寧 4年(서기 1105년)에 도덕경 탄생지를 처음에는 함곡관 내에 있는 천보관(天宝觀)으로 하였다가 이후에 태초궁(太初宮)으로 개정하여 현재의 공식적인 탄생지로 되었다.

끝으로 도덕경은 내 마음속에 도덕경과 철학자의 도덕경과 함곡관의 도덕경은 모두가 달랐다. 내가 아는 도덕경은 수양의 도덕경이며. 철학자의 도덕경은 도의 논쟁 도덕경이요. 함곡관의 도덕경은 위상과 그 크기로서의 도덕경이라 할 수 있겠다는 것을 이번 함곡관 여행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버려두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돌아간다'는 노자의 말씀이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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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 2014-09-10 23:14:02
정말 좋은글 깊은여운을 남기며 다음글을기대하게습니다

fkvkdpf 2014-08-07 05:29:37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오유정 2014-08-01 14:37:18
내가 여행을 다녀온듯 도덕경이 여운을 남기네여, 또한 김장수 관장님이 함곡관 주인인듯 참 잘어울려요 대단합니다. *^^*

양촌 2014-07-31 16:16:38
이글을 읽으면 마치 제가 함곡관을 간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요즘 새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드는데 노자의 "소국과민"이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글 부탁합니다!!!

2014-07-31 07:57:54
좋은 글 감사하구요....
글(기행문)의 흐름과 내용이 정말 수려하십니다. 전혀 몰랐던 중원에 대한 호기심, 중원 무술과 노자/도덕경에 대한 호기심이 샘솟게 됨니다. 연이은 관장님의 좋은 글에 즐거움이 새록새록입니다.
두고 보고 기다리고, 그냥 지켜만 봐줘도 세상사는 제대로 돌아갈텐데 현대를 사는 이들은 작위와 목표달성과 업적으로 치장되는 수고로 점철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을 살아가고 있어 안타깝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