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어설펐던 1년이지만 그만큼 최선을 다했던 시기라 생각된다. 그리고 1년, 또 1년이 지나자 낯설었던 학교도 점차 익숙해졌다. 수업의 연속인 나날과 각종 학교 행사들, 그러다보니 매월 반복되는 일정들이 있고, 결국 매년 반복되는 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슷한 나날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드니 슬럼프라는 것이 찾아왔다. 쳇바퀴 속의 다람쥐 같은 내 모습, 나의 교육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따른 실망감이 누적되면서 나의 열정도 점차 사그라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13년 3월, 두 번째 학교로 발령이 났다. 첫 학교에 비해 작은 6학급의 시골학교였다. 처음에는 많은 업무량에 당황했다. 한 선생님의 1년이 3월 같을 것이라는 말씀에 농담이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슬럼프에 벗어나 있었다. 처음 1년처럼 다시 열정을 갖고 학교에 가고, 수업을 하는 내 모습에 기쁘면서도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내가 슬럼프에서 벗어났지?’
너무나도 기본적이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에 해답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잊고 있었다. 업무와 일정에 지치면서 나는 바쁘니까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는 거라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4년을 지내고 나니 ‘저 아이는 성실하고 착하겠다. 저 아이는 좀 이기적이구나’라면서 겉으로 보이는 몇 가지 행동과 말을 보고 오만하게 판단을 내렸다.
교직경력 4년에 뭘 안다고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전동초등학교에 와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아이들의 겉모습을 보고 분류를 했다. 업무가 많아진 것은 그런 나의 판단에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같이 생활을 하면서 내 분류가 틀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겉에서 보면 불량하다고 느꼈던 아이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이 해야 되는 일, 안해야 되는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의젓한 아이였던 것이다. 사람은 복합적인 존재인데, 더구나 아이들은 아직 고착화된 생각이 없어서 더더욱 많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머리로만 알고 가슴에서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면서 그런 아이들의 반전된 모습은 나에게 매력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아이는 어떤 반전 매력이 있을까? 혹시 저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어두운 면이 있으면 지도가 필요할텐데?’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고, 새로운 모습을 알수록 재미가 생겼다. 그 뒤로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감성적으로 다가가고자 연수를 듣고 실천해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슬럼프에서 벗어나 있었다.학교 또한 보통 직장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무감각해지는 것은 슬럼프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슬럼프에 빠지면 결국 제일 힘든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다른 직장에는 없는 아이들이 있다. 이것은 크나큰 차이다. 비슷하고 반복된 일상속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달라지고 있고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 모습을 발견하려고 할 것인지, 아니면 비슷한 생활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살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신규도 아니고, 베테랑 경력자도 아닌 어중간한 경력의 나는 무엇보다 가장 기본인 아이들에게 집중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