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찾아 먼 길 왔는데, 산만 보이네"
"스승 찾아 먼 길 왔는데, 산만 보이네"
  • 김장수
  • 승인 2014.06.13 11:46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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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무인들, 중국무술 고향 가다 <1> 대륙 중원에서

                      김장수 유성태극무술관장  
유성태극권전수관 김장수 관장과 수련생들이 중국의 무술의 고향인 중국 중원 땅의 고수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유성태극권전수관 수련생들의 중국 기행은 이번이 세 번째로, 첫 번 째로 무당산(武當山)에 이어 두 번 째로 백두산(白頭山)을 다녀왔고, 올해 세 번째로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7일까지 소림사와 관림, 용문석굴, 향산사, 함곡관, 화산, 백마사 등을 탐방했다. 김장수 관장의 여행기를 8차례에 걸쳐 시리즈로 전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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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항상 화두로 머리를 맴돌고 있다. 이런 저런 인연에 따라 맡은 인연이 많다. 아버지, 남편, 태극권전수관 관장 등 나를 바라보거나 찾아오는 소중한 인연들이 많다. 대전 유성에서 수십 년을 무술을 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일 년에 한번 정도 무술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삶의 활력소와 함께 또 다른 공부가 되고 있다. 대전을 떠나야 대전이 보이고 자신의 위치를 떠나봐야 진정한 자신의 역할이 보인다고 했던가.

“여유로움을 찾아서 자유여행을 떠나 수행의 길을 따라 명사와 명산을 찾아 여기 왔는데, 師(스승)는 없고 山만 남아 여행에서 관광으로 되돌아가네......”
                                                                   - 2014년 6월 6일 북경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누구나 여행을 하다보면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장미는 봄에 보는 것과 겨울에 보는 것은 다르며, 자연 그대로의 돌과 조각을 한 돌의 재질은 같지만 모양은 다르다.

이번 여행계획을 하기 전, 작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성태극권전수관 새벽반 수련생은 S박사를 비롯해 여러 분이 동문처럼 수련하고 있다. 그중에 S박사는 올해 67세로 중국무술 우슈를 수련한지 15년째이다. S박사는 현재 우슈 공인 4단으로 우슈사범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을 취득한 자타가 공인하는 무술 매니아다.

나는 1991년부터 중국무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순수 자비로 중국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수련생들이 고맙게도 스승이라고 대우하며 비행기표를 부담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김장수 관장이 함곡관에 위치한 노자의 동상 앞에서 태극권을 시연하고 있다. 
올해 5월 초에 변함없이 아침운동을 하던 중에 한 수련생이 갑자기 중국 무술을 하는데 비법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때 바로 속시원한 대답을 못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정리해보았다.

“무술수행에 비법도 있고 정법도 있다. 잘못하면 부작용이 심할 수도 있다”

“비법은 과연 있는가? 크게 보면 답은 있다와 없다 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크게 보면 답은 둘 다에 있다. 답은 소위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행복이 있는가 없는가? 도는 있는가 없는가? 모든 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비법역시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비법의 정의는 비밀스런 법이다. 비밀스러운 것이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의 것 또는 남에게 알려주기에 곤란한 것을 말한다. 내가 보기엔 비법은 사회적으로 검증이 안 된 상태라 목적을 두기 위한 수단인데 잘못하면 부작용이 심해 매우 위험한 것이 비법의 본질이다.”

“무술에는 비법과 정법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법은 비법이 아니라 정법이다. 정법은 사회적으로 공유하여 서로 함께 시연하면서 공감한다. 따라서 더 발전하는 것이 각종 경기 시합인 것이다. 어떠한 무술은 비법으로 시작하여 정법으로 발전한다. 비법은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면 비법은 상실된다. 비는 사라지고 그 법만 남는다. 그 법이 정법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무술의 초창기는 비법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전해지지 않는 비법인 장풍이나 경공술 등에는 있는가? 아마 있었으면 오늘날까지 전해졌을 텐데 없어졌기 때문에 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보기엔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의문을 자아내본다.”

중국 중원을 향해 줄발하는 날인 지난 5월 30일 오전 7시 여행준비를 마친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도장 근교에 사는 김양태 통일감정평가법인 대전지사장이 함께 대전정부청사 앞까지 가자고 한다. 그의 부인이 운전하여 유성도장에서 청사까지 가면서, 이번 여행의 계획의 총괄은 내가 짜고 일정은 O박사가 준비하기로 했다. O박사는 그가 근무하는 연구소에서도 해외출장 계획을 세우는데 정평이 나있다.

O박사의 계획은 바로 김양태 지사장이 실행했다. 김 지사장은 중국여행 왕복열차표예약, 호텔예약은 그의 부인에게 부탁했다. 김 지사장의 부인은 중국인으로 중국 모 대학을 나와 중국 변호사자격은 갖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문화 가족의 회원으로 사회활동도 많이 하시는 분이다. 차안에서 중국말이 서툰 남편에게 자기가 예약은 잘해놨기 때문에 서둘지 말고 잘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사이 도착했다. 정부청사에서 함께 모인 7명이 김포공항으로 출발하는 리무진에 올랐다.

북경에 도착한 우리는 북경공항에서 북경서쪽에 있는 서쪽 역(西站)에 도착하여보니 사람이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이 많아 북새통 사이에서 중국식으로 요령껏 파고들어 표를 사야 했다. 아마도 중국자유여행을 한분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여 미리 예약된 낙양 열차표를 받고 플랫홈에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낙양열차에 올라타 보니 철저한 계획이 오히려 두렵게 다가왔다.

낙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역 주변에는 택시 타는 곳이 있는데 이곳도 인산인해로 얌체택시 호객이 장난이 아니다. 택시 타는 곳에서 택시를 탈 때 바로 순서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앞차는 S박사, 우경명씨 부부가 타고 나는 김 지사장과 O박사 부부와 동승하여 여행 내내 항상 이렇게 다녔다. 밤 12시가 넘어 여도유객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대륙의 첫 밤을 보냈다.

  낙양 시내 삼륜차 앞에서 관림을 향해 출발하기 위해 중국 운전기사들과 얘기를 나누는 일행 
6월 1일 아침을 7시에 식사를 마치고 낙양시내를 찾아 거리를 나섰다. 그런데 낙양중심 호수근방에서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말까 하는 사이 갈림길 선택에 차도와 인도의 경계 진입로 차단석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사고였지만 그 순간은 보통사람이면 중상을 입고도 남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뭔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낙양을 처음 왔던 것이 약 10년전 이다. 그때와는 너무나 많이 변하였다. 오늘 낙양은 신도시(용문역)와 구도시(낙양역)로 구분된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는 여도유객대주점( 丽都唯客大酒店)은 낙양이 경제개발로 세계화로 가는 신도시로서의 모양새를 가진 호텔이다. 신도시주변에는 도시계획이 잘되어 있는데 절도 있는 도시형 거리는 좋지만 인도와 차도 경계석은 위험천만하게 설치되어 있다. 물론 앞만 잘 보면 이상은 없지만 주변인에 대한 배려는 생각할 문제이다. 이 사고는 어렵게 준비한 카메라 렌즈 파손과 함께 생각보다 심각한 사고였다. 서성거리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 관공서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의 의견은 관림관광으로 정하는 과정에 택시 또는 자전거 원동기 (옛날에는 인력거) 탈까 말까 하는 과정에서 택시로 선택하여 약 7km 정도의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여 관림으로 향하였다.

 우슈매니아인 김양태씨가 소림사를 품고 있는 숭산에서 쿵푸 시범을 보이고 있다.   

변방에 대한 자부심을 자칭한 중국(中國)과 중원(中原)의 의미

중국 사람들에게 중원 땅은 중심지이다. 중원(中原, Zhōngyuán)은 전통적으로 황하(黄河)의 중류·하류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하남(河南)성 대부분과 산동(山东)성 서부 및 하북(河北) · 산서(山西)성 남부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현재는 하남성을 중심으로 하북성, 산서성, 안휘성, 산동성의 일부(주로 서부)도 포함시켜 지칭하고 있다. 본래 한족(漢族)의 본 거주지역, 즉 과거 주나라(周)가 있던 곳을 지칭하던 말이다. 이곳을 지배해야 중국을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하던 지역이었다. 주(周)왕조 이후 한족(漢族)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장강과 그 서쪽 영역도 중원으로 인식되어 화북평원(華北平原)까지 넓어졌다.

역사적으로 중원과 중국은 같은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중국'(中國)은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시경』에서 사용된 중원 혹은 중국은 '사방'(四方, 동서남북) 그리고 '사이'(四夷, 변방 오랑캐)와 대칭되어 사용되었는데, 이것으로 주(周) 왕조 시대에 처음 출현한 '中國'이 주 왕조의 수도를 지칭하거나 주나라 왕이 통치했던 지역 일대를 가리키는 어휘로 쓰였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이라는 어휘가 주권국가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1689년 청나라가 러시아와의 분쟁결과로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尼布楚條約)에서 당시 청조 외교 사신의 신분을 호칭할 때 '중국'이 만주어로 처음 사용되었다. 외교상에서 한문으로 '중국'이 사용된 용례는 아편전쟁의 패배로 중국 청조가 영국과 맺은 1842년 8월 29일의 남경조약(南京條約)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남아 있다.

중국의 중원땅 낙양에서 중국기행의 첫날을 시작하면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지만,  심기일전하여 이왕에 마음먹고 왔으니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중국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유성태극권전수관 전화 042-822-0513.  

 신선 수행도량인 화산에서 유성태극권전수관 우명경씨가 공중발차기 초식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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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쿵 2014-07-29 22:37:10
좋은 여행! 관광하곤 좀 다르네요!

hongguohehe 2014-07-21 20:46:19
중국인이 저도 모르는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되여서 감사합니다

준윤 2014-07-19 05:49:27
자신이 건강해야 타인의 위험도 구할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우슈를 배우고자 합니다.
차제에 중국문화 및 무술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싶게 만드는 좋은 기행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음글 기다려지네요..

김성환 2014-06-21 07:59:30
노자도 자기 맘 아는 관장님이 와주셔서 많이 기뻤겠네요. 태극권으로 생활에 큰 활력을 받고있어 감사드리고요.
6개월차 저녁반 수련제자 올림

나라한 2014-06-20 01:06:28
태극권 발원지와 함곡관에 가보고 싶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