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10분, 총총거리며 교무실을 나와 1학년 3반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살펴본다. 엎드려 자고 있지 않은지, 휴대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훑어본다. 오늘도 몇몇 아이들은 휴대폰에 얼굴이 빠질 듯이 들여다보거나, 혹은 가방을 끌어안고 취침 중이다. 아침에 신나게 자전거에 싣고 온 상쾌함도, 어제 빗속에서 축구 경기에 열을 올리느라 동분서주했던 그 열정도 오늘 아침 교실에서는 찾을 수 없다. 힘없이 늘어진 모습을 보고 기운이 빠지지만 그 내색을 감추고 오히려 더 힘차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자, 오늘도 열심히 보냅시다.”
잠이 덜 깬 듯 부스스한 얼굴로 뭐든 꺼내 펼치는 모습이 안쓰러워 차라리 쉬게 할까, 한 숨 더 자게 할까 잠시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담임교사로서 냉정함을 가져야 하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꾹 누른다.
아직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학업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상담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중학교 때 놀았으니 이제는 공부를 다시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혹은 “중학교 때 성적이 떨어졌었는데, 다시 올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였다.
교실에 모두 함께 모여 있을 때는 공부하는 것이 싫고 지루해 하는 듯 보이지만, 저마다 마음속으로 공부를 잘 해내고픈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이다. 그 소망들을 알기에 자는 아이들을 뒤에서 일으켜 세우지만, 왠지 입시경쟁에 내모는 것 같아 머뭇거리는 걸 보면 나는 아직 풋내기 교사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고 장영희 교수의 수필 작품을 함께 읽었다. 작가에 대한 전기를 학생들과 함께 검색하는 중에, 한 학생이 ‘작가가 남긴 글’을 읽어 보자고 했다. 몇 개의 구절을 읽고 내려가다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문장이 있었다.‘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시험인지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것은 용기의 시험이고, 인내의 시험이고, 사랑의 시험이다’
순간, 모두에게 울림이 있었던지 아이들의 눈빛이 빛났다.
다른 반에서는 작가의 말을 조금 각색해서 인용했다. “얘들아, 우리 인생에서는 어떤 시험이 가장 중요할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능’, ‘입사 시험’을 꼽았고, 간혹 ‘군대 신체검사’를 말해 웃음을 자아내는 학생도 있었다.
이어서 세 가지 시험을 얘기하자, 어떤 학생은 용기의 시험을 잘 보고 싶다고 하고, 또 어떤 학생은 인내의 시험을 잘 보고 싶다고 했다. 사랑의 시험은 말하기 쑥스러운지 자기들끼리 웃고 만다. 나는 용기의 시험을 잘 치르고 싶다고 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학교 일과를 수행해내는 서로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내심을 배운다. 빗속에서 온 몸을 흠뻑 적신 채 축구 리그전을 치른 뒤에 서로를 격려하고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 너희들의 미소 속에서 사랑도 배운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담담하게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너희에게서 용기도 배운다.
“얘들아, 우리 모두 이 세 가지 시험에 낙오되지 않는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자”